모든 지식의 근본일 뿐만 아니라 삶의 목적이기도 하다. 인생을 참으로 복되게 사는 유일한 수단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문은 인간의 주된목적에 대해서 묻는다. 그 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하고 영원토록 즐거워 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청년들의 신앙생활의 답은 어디에 두고 있는걸까? 우리는 이 지식의 근본을 잘 유지하고 있는지 의문이다.삶의 각박함 뿐만 아니라 인생에서 매번 일어나는 실수와 관계로 인한 상처로 얼룩진 우리들 마음의 자화상은 일그러져 있다.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는 자세는 미련함으로 빠져드는 안일한 태도다. 쾌락에 젖어가는 이 사회에 도덕적 훈계와 윤리적 질타는 멸시 받기 일수다. 하물며 일반적인 도덕관념도 무너지는 마당에 진리를 선포하면 잠꼬대 하는 경우로 비춰지기가 쉽다. 그래서 직장에서는 침묵의 태도를 고수하며 그리스도인임을 감추고 살아간다.
특정 사건을 계기로 신앙을 드러낼 기회를 포착했을 때만 비로소 자신의 믿는 바를 드러낸다.
당당히 신앙을 고백해야 할 시기에 고개를 숙이는 것이 다반사가 된 것이다. 또한 아비의 훈계와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는 권면에도 불구하고 가정에서 내려오는 신앙교육도 현대에 와서는 단절되어 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교육의 공간이 마땅치가 않아지면서 신앙의 뿌리는 약화됐다. 학업과 취업이라는 생존에 국한된 강요로 인해 신앙이 뒷전으로 밀렸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시공간의 제약 없이 큰 소리로 부르신다. 소리가 멎은 뒤에 하나님을 찾는 것은 늦지 않을까 싶다. 하나님께서는 듣지 않았던 자들에게 두려움과 재앙과 공포가 엄습할 것을 선포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삶을 빌미로 조건을 내걸며 핑계로써 신앙을 뒷전으로 미뤘던 자들은 새겨듣지 않으면 후회할지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이 끝내 재앙을 만났을 때 웃으시고 두려움이 임할 때 비웃는다 하셨다. 온 마음이 다 서늘해진다. 우리는 얼마나 귀를 막고 눈을 가리며 입술을 막고 말씀에 대해 침묵해 왔는가...
심지어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미련한 처사를 취하는 우리의 행동은 참 어리석다....
잘못된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이 꾀에 의해 배부르지 않은 자가 되어야 할텐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 없이 안전하다...
우리의 근본은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을 경외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으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진정한 안식처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