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책을 자주하다 보면 자연의 풍경이 단일하지 않다는걸 느낀다. 평소에 이런 모습들을 얼마나 자주 놓치는지 모른다.
풍경을 감상할 때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순간을 흩날려 보내고 있는지를 돌아본다. 그 이유는 열심히 사느라 그렇다.
그렇다면 신자는 무엇을 위해서 열심히 사는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 6:26)
어제 수요기도회 때 강단에서 울려 퍼진 말씀이다.
자연의 풍경은 놓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눈앞의 유익에 눈이 멀기 쉬운 존재다. 정작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느슨하게 쥐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았다...... 손아귀에 힘이 없다.
(2) 수련회 철인지라 타임라인에 청소년 수련회 진행모습들을 많이 본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웅장한 세션들로 가득한 풍경을 봤다. 흡사 클럽을 연상케 했다. 비트에 맞춰 청소년들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아래위로 으쌰으쌰한다.
이게 아이들에게 이게 무슨 유익일까 생각이 든다. 해당 교회에 출석하시는 집사님들 대부분이 표현하시진 않지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신다.(아무래도 교역자를 존중하셔서 인 것 같다.)
나도 마커스나 YM집회를 참여한다는건 굳이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개교회 수련회에서 이런 모습은 이제 너무 의아할 뿐이다.
이 가운데 하나님께서 풍성히 사랑하시는 청소년 지체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 이때만 열심히인 지체가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시험기간이나 기타상황이 닥쳤을 때 아이들은 주일을 뒤로 미룰 것이다.(부모도 거들것이다.) 당장 눈앞의 유익을 쫓을 것이 드러나있다. 음에 홀려 이것을 은혜로 착각함이 이와 같기 때문이다. 지루한 말씀 공부는 제껴두고 드럼비트위에서 은혜(?) 한몫하는 것이 풍성하게 느껴지고 편하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 지적은 피할 수 없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6:39)
세션에서 '영생'을 얻지 않는다. '방언'한다고 구속의 은혜가 적용된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는 '표적'은 바로 자기자신과 그 입술에서 선포하신 말씀이다.
거기에 영생이 있다. 거저 주신 은혜의 수단을 외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일하시는 존재이시다.
아이들이 말씀을 지루해 하더라도 안듣는 것이 아니며, 혹여 교육자가 전달방식에 고루한 면이 있을 수 있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서 성경과 교리교육의 방법론을 모색해야 한다.
해당 수련회 집회에 투자된 비용이 차라리 교육에 투자됐으면 어떨까 싶다. 진리에 목말라하는 청소년들이 있을지 모른다.
숫자적 부흥에 집착하는 세상의 '공리주의'적 사고 방식에서 시급히 탈피해야 한다. 시대가 이런데 표적이 아니라 유익을 구함은 이제 그쳐야 할 때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