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복음 안에 그리스도가 제시될 때 그분을 영접하는 것이 당신의 의무다. 당신의 죄를 회개하고 모든 대화 가운데 거룩하라. 하나님은 이런 것들을 당신에게 명하신다. '당신의 의무의 기준은 당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다.'
- 토마스 보스턴
전도의 주체가 늘 누구인지를 상기해야 한다.
한 사람을 회심시키는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보스턴의 말대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전파하며 모험적으로 화살을 쏘지만, 하나님이 친히 그 화살을 인도하셔서 그분이 보시기에 알맞은 자에게 떨어지게 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은혜의 방편에 의지한게 아니라 '수단'에 치우친건 아닌지 모르겠다.
새생명 축제, 전도폭발 운동, 새친구 초청잔치등
이런 것들이 다 나쁘다고 부정하지는 않겠다.
다만 우리가 준비함에 있어 무엇이 결여됐는가를 살펴야 함이 없었던건 아닐까?
보스턴은 이어서 책에 이런말을 남겼다.
"당신이 집에 갔을 때, 그 어떤 신앙적인 대화도 들리지 않는 당신의 집에 갇히지 않기를 소망한다. 필자는 당신이 구별된 조용한 장소로 물러가서 들었던 것들을 묵상하고 적절한 질문들에 대해 당신의 양심을 연습하기를 바란다. 당신이 멍청한 마귀에게 사로잡혀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 입을 열 수 없게 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필자는 당신이 침대로부터 세상 일로 또 세상 일로부터 침대로 밀려나지 않고, 오히려 멸망 당하고 있는 영혼의 문제를 두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그동안 그저 교회로 사람을 끌고 오기 위해 악기를 연습하고 댄스를 연마했다.
특히나 청년들이 그 노고에 박차를 가했다. 지쳐가면서......
근데 우리는 정작 중요한 훈련은 받지를 못했고 하지도 않았다. 일을 하나님께 맡기는 훈련 말이다. 이미 주어진 믿음과 허락된 은혜의 방편을 눈앞에 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런 방임은 진행중이다.
누가 이런 힘든 사역방향을 굳이 택하겠는가?
(그럼에도 계시니 감사하다......)
하지만 나는 재정 빵빵한 교회의 거창한 행사를 주체로 전도가 주관되는 것 보다, 작지만 거룩한 교회에서 훈련받은 한 성도가 평범한 일상에서 작은 섬김으로 복음을 전파함이 더 낫다고 본다.
효율은 따지지 않겠다. 보스턴의 해석에 100% 동의한다. 오늘 믿지 않은자가 내일 믿을 수도 있는 법이다. 복음은 우리 상식으로는 믿기지 않는 방식으로 전파되고는 한다.
그야말로 '비효율의 은혜'다. 오늘 믿지 않던 자가 내일 믿을 수도 있는 법이다.
"하나님은 선하고 자비가 많으시다. 주님은 그분의 은혜로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여 종종 "그분을 찾지 아니하던 자에 의해 찾아냄이 되시기"(사 65:1)를 좋아하신다."
- 토마스 보스턴의 인간본성의 4중 상태 p.196~200까지 읽고 나서의 기록...
전도의 주체가 늘 누구인지를 상기해야 한다.
한 사람을 회심시키는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보스턴의 말대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전파하며 모험적으로 화살을 쏘지만, 하나님이 친히 그 화살을 인도하셔서 그분이 보시기에 알맞은 자에게 떨어지게 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은혜의 방편에 의지한게 아니라 '수단'에 치우친건 아닌지 모르겠다.
새생명 축제, 전도폭발 운동, 새친구 초청잔치등
이런 것들이 다 나쁘다고 부정하지는 않겠다.
다만 우리가 준비함에 있어 무엇이 결여됐는가를 살펴야 함이 없었던건 아닐까?
보스턴은 이어서 책에 이런말을 남겼다.
"당신이 집에 갔을 때, 그 어떤 신앙적인 대화도 들리지 않는 당신의 집에 갇히지 않기를 소망한다. 필자는 당신이 구별된 조용한 장소로 물러가서 들었던 것들을 묵상하고 적절한 질문들에 대해 당신의 양심을 연습하기를 바란다. 당신이 멍청한 마귀에게 사로잡혀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 입을 열 수 없게 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필자는 당신이 침대로부터 세상 일로 또 세상 일로부터 침대로 밀려나지 않고, 오히려 멸망 당하고 있는 영혼의 문제를 두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그동안 그저 교회로 사람을 끌고 오기 위해 악기를 연습하고 댄스를 연마했다.
특히나 청년들이 그 노고에 박차를 가했다. 지쳐가면서......
근데 우리는 정작 중요한 훈련은 받지를 못했고 하지도 않았다. 일을 하나님께 맡기는 훈련 말이다. 이미 주어진 믿음과 허락된 은혜의 방편을 눈앞에 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런 방임은 진행중이다.
누가 이런 힘든 사역방향을 굳이 택하겠는가?
(그럼에도 계시니 감사하다......)
하지만 나는 재정 빵빵한 교회의 거창한 행사를 주체로 전도가 주관되는 것 보다, 작지만 거룩한 교회에서 훈련받은 한 성도가 평범한 일상에서 작은 섬김으로 복음을 전파함이 더 낫다고 본다.
효율은 따지지 않겠다. 보스턴의 해석에 100% 동의한다. 오늘 믿지 않은자가 내일 믿을 수도 있는 법이다. 복음은 우리 상식으로는 믿기지 않는 방식으로 전파되고는 한다.
그야말로 '비효율의 은혜'다. 오늘 믿지 않던 자가 내일 믿을 수도 있는 법이다.
"하나님은 선하고 자비가 많으시다. 주님은 그분의 은혜로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여 종종 "그분을 찾지 아니하던 자에 의해 찾아냄이 되시기"(사 65:1)를 좋아하신다."
- 토마스 보스턴의 인간본성의 4중 상태 p.196~200까지 읽고 나서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