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의 영광은 그들의 힘이요, 노인들의 아름다움은 백발이니라.(잠 20:29)
청년시기에 주어진 젊음이란 특권은 많은 도전을 가능케하는 원동력이라 볼 수 있다.
사람은 나이가 지긋이 들게되면 생각에 담아둔 것을 행동으로 쉽게 옮기지 못하기 마련이다.
육체적, 정신적, 상황적 배경등에 자연스레 제한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이 언급한 "모든것에 시기가 있다"는 격언은 매우 일리가 있다.
지혜자는 청년들의 영광은 그들의 힘이라 말한다. 아무래도 젊을 때 하나님께서 던져주시는 은혜와 소명등에 열정적으로 뛰어들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창때 허락되는 체력이 고된사역을 감당케하고 말씀을 배움에도 도전적으로 몰입하게 한다.
청년의 시기에 쥐어지는 한시적 은사는 체력과 젊음일 것이다. 그래서 한창이라도 어릴 때 회심한다는 것은 굉장한 호사를 누리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만큼 낭비하는 시간을 줄이고 하나님께 더 집중하여 사역에 임하니 말이다.
체력까지 겸비되니 말씀이 지시하는 삶에 전투적으로 돌입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 나이가 지긋이 든 노인들이 취하는 아름다움은 백발이다. 청년들이 남아도는 힘으로 돌격적인 삶을 보여준다면 노인들은 현명하고 사려깊은 지혜의 삶을 살아낸다.
육체적 제약이 크지만 노인의 머리가 '백발'인 것은 그간 살아온 경험과 지혜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그들에게도 청년의 시기가 있었고 다른면에서는 먼저 하나님을 영접하고 섬겨왔을 것이다. 노인들은 이제 자연스레 '삶' 자체가 자연히 복음을 드러내는 상태로 여겨진다.
이는 나이가 지긋이 들어서도 신앙의 상태가 변함이 없는 자들에게는 뼈아픈 권면일 것이다.
사람은 죽음에 가까워 질수록 추악한 형태를 띄기 마련이다. 죽음직전에 있는 노인의 얼굴이 평안한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신자의 노년은 아름답다 칭한다.
신자에게 죽음은 죄짓는 것을 그치고 그리스도께로 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자연히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가는 것이라 표현해도 좋을 것 같다.
J.C라일은 힘이 남아도는 청년시기에 신앙의 열심을 갖고 살아가라고 권면한다. 왜냐하면 나이가 들어서는 섬길 힘이 없기 때문이라 한다.
청년때 부지런히 훈련받은 경건은 나이가 들어서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자연스레 후대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된다.
이를 통해 교회직분에도 나이가 중요함을 본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유교적 사고에 자유하지 못한 것을 지난 공동의회를 통해 확인했다. 연륜이 되야 장로로 섬길 수 있다는 사고는 일부는 맞지만 정확히는 아니다.
장로교회 헌법이 장로의 임직나이를 30으로 정한것은 성경적이라 볼 수 있다. 가장 신체적으로 왕성한 시기임과 동시에 활동적으로 섬김사역에 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교회의 재량에 따라 나이제한을 조절할 수 있지만 직분에 대한 부름은 우선적으로 하나님께 있다. 단, 교회를 통해서 부름받을 뿐이다.
그래서 교회가 세운규정이 중요하고 다음으로 어느정도의 지교회 재량이 가용되는 것이라 본다.
만일 이것이 경험과 연륜이 중요시 되는 결론으로 회의가 흐른다면 나이있는 장로와 젊은 장로를 함께 세우는 것도 대안이다.
적극적 활동은 젊은 장로가 맡는 반면 계획과 방향제시에 있어서는 나이든 장로가 적합할 것이다.
다만 한국교회에 이런 것들이 성립하기 위해어는 많은 시간과 세대들의 순교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