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존재하신다(히 11:6)는 믿음의 확신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기도하는 영혼에게 많은 방법으로 기운을 복돋워 준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소망을 일으켜 준다.
- 토마스 굿윈 <믿음의 본질 中>
기도의 기초에 믿음이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구절이다. 즉 , 믿음없이는 하나님께 아무것도 소급될 수 없다. 기도에 있어서 믿음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마음이 작음을 뜻한다. 이런 상태에서 기도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 기쁨으로 와닿을 수가 없다.
기도의 뿌리인 믿음이 연약하다면 그에 대한 응답또한 불확실 하다고 볼 수 있겠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기뻐하시지 않는 기도에 대해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신다.
하지만 히브리서 기자가 기술한데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간다면 찾는 자들에게 상주실 것을 반드시 약속하고 성취하신다.
이렇게 보면 기도는 매우 즐거운 것이며 하루라도 빼먹으면 베기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면 나의 하루 일과를 돌아보면 기도를 못했음에 괴로워하는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하나님께서는 신자의 기도에 늘 귀를 기울이고 이미 이뤄주실 것들을 가득 지니고 계심에도 확신의 연약함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일이 더 많다.
굿윈의 해석을 읽으면서 기도는 빡빡한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자유로운 소통과 교제라는 점이 더 크게 와닿는다. 기도의 양보다는 얼만큼 하나님과의 교제를 즐기느냐가 더 중요해 보인다. 아기의 부모를 향한 손발짓이 애간장을 녹이듯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수단이면서도 직접적인 교감의 소통구다.
하나님께서는 신자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계시며 베풀기를 주저하지 아니하신다.
하지만 우리의 상황과 스스로의 자존감이 이것에 대해 반감을 가져다 주기도 하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기도를 한다는 것은 어렵다.
무응답에 대한 반감이 어떤식으로 나타날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 또한 응답이라지만 체험으로 각인되기 까지는 성도마다 다르다. 이것이 딜레마라면 그렇다고 볼 수 있겠다. 오히려 그런 반감을 지닌 성도들은 무응답도 응답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고픈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든다. 오히려 아버지께서 성숙한 성도들에게 이런 지체들을 향하여 기도와 구제를 행하도록 명령 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려운 상황가운데 하나님을 찾음은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겸손의 자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버지께서 그 상황가운데로 인도하셔서 자신을 찾게 하셨음이 올바른 표현일 것 같다.
많은 직장인 형제, 자매들이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하소연 한다. 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양것 기도해야 들어주신다는 구절은 없다. 오히려 성도가 기도를 하지 않는 상황에 오래 처하게 된다면 매질(?)을 해서라도 당신께로 나아오게 하신다. 시간 없음도 한 낮 핑계거리 밖에 안돼기에 할 말이 없어진다. 오히려 "하나님과 하나님의 속성들, 그리고 신적 약속들의 진실성과 신실성 같은 것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확신"을 은근히 내팽겨 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2016년 7월 11일 월요일
2016년 7월 9일 토요일
수기(手記), 타이핑(typing)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글도 타이핑으로 대부분 작업한다.
지금 작성하고 있는 내용도 타자로 휘갈기는 내용이다.
시간도 단축되고 여러모로 주어지는 편리함도 많이 주어진다.
그러나 속기로 글을 작성할 수 있게 되면서 내공실린 글이 아니게 됨이 너무나 큰 것 같다.
워드, 한글로 문서를 익숙하게 사용하면 어느 문장이 어색한지, 단어가 무엇이 틀렸는지를 금새 골라낼 수 있다. 이런 고난도 기술은 다양한 글을 많이 읽고 써봄으로써 얻어지는 것이지만 어느정도는 전문 글쟁이들의 영역이기도 하다.
이런 공력을 얻는 것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컴퓨터가 대중에게 보급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쉽게 글을 작성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만큼 가벼운 글도 쉽게 휘날릴 수 있게 됐다.
분당 1000타 이상 나오는 대한민국의 보편적 국민이라면 단 한마디를 너무나도 손쉽게 남긴다.
하지만 우리가 손으로 글을 써본지는 이제 얼마나 되는걸까?
타자로 글을 잘 쓰면 수기로도 잘 쓸 줄 알았는데 막상 격어보니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손으로 글쓰는게 더 어렵다. 혹은 깊이 생각하는 습관이 결여됐다고 생각도 든다.
조선시대 대문호중 하나인 박지원은 글을 쓰다가 문장이 마음에 안들면 처음부터 다시 썼다고 한다. 타인이 보기에 문제가 없는 문장이였음에도 말이다.
디지털 세대의 우리는 백스페이스 한번 눌러 삭제해버리면 끝이지만 그 시대에는 한 문장을
정성들여 써야 했던 시기다. 과거에 깃펜을 휘갈기던 서양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동양에서는 문방사우가 선비를 대표하는 상징이면서도 '도(道)'를 닦는 도구였다.
예의를 철저히 훈련받고 사람이 얼마나 글을 신중하게 써야하는지를 배웠다고 본다.
다만 오늘날은 얼마나 워드문서를 짧은 시간안에 편집 작성하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댓글 한마디도 얼만큼 상대를 센스있게 조롱하고 비아냥대느냐가 재치있는 사람이다.
되려 진지하고 아날로그적인 글들은 이제 인기가 없다.
자판은 편하지만 가벼워서 타이핑인듯 하다. 재밌는 글만 쓰는 도구인가 보다.
타이트하고 핏하게 작성하지만 무게는 없어야 한다. 손가락에 힘을 빼고 모든 사람에게 공감을 가져다 주되 즐거워야만 한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 공자는 붓을 잡는 손의 검지 하나로 장수를 쓰러뜨렸다. 좀 과장된 것도 없지 않아 있지만 필력이라는게 어떤 것인지를 잘 설명해주는 일화라 생각한다. 진정한 글은 사실 무게가 있다. 얼마나 진중하고 심도있게 써댔으면 손가락에 그런 괴력이 깃들었나 싶다.
반면 나는 열손가락으로 평범한 사람을 밀어도 다 분질러지는건 아닐지 모르겠다.
손으로 글을 쓰다보면 참 드럽게 못쓰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재밌고 쉬운 글도 좋지만
그보다는 진리를 옮겨적을 때 그 무게를 감당할만한 필력이 생기고 싶은 욕심이 사실
간절하다.......
지금 작성하고 있는 내용도 타자로 휘갈기는 내용이다.
시간도 단축되고 여러모로 주어지는 편리함도 많이 주어진다.
그러나 속기로 글을 작성할 수 있게 되면서 내공실린 글이 아니게 됨이 너무나 큰 것 같다.
워드, 한글로 문서를 익숙하게 사용하면 어느 문장이 어색한지, 단어가 무엇이 틀렸는지를 금새 골라낼 수 있다. 이런 고난도 기술은 다양한 글을 많이 읽고 써봄으로써 얻어지는 것이지만 어느정도는 전문 글쟁이들의 영역이기도 하다.
이런 공력을 얻는 것은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컴퓨터가 대중에게 보급되면서 많은 사람들은 쉽게 글을 작성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만큼 가벼운 글도 쉽게 휘날릴 수 있게 됐다.
분당 1000타 이상 나오는 대한민국의 보편적 국민이라면 단 한마디를 너무나도 손쉽게 남긴다.
하지만 우리가 손으로 글을 써본지는 이제 얼마나 되는걸까?
타자로 글을 잘 쓰면 수기로도 잘 쓸 줄 알았는데 막상 격어보니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손으로 글쓰는게 더 어렵다. 혹은 깊이 생각하는 습관이 결여됐다고 생각도 든다.
조선시대 대문호중 하나인 박지원은 글을 쓰다가 문장이 마음에 안들면 처음부터 다시 썼다고 한다. 타인이 보기에 문제가 없는 문장이였음에도 말이다.
디지털 세대의 우리는 백스페이스 한번 눌러 삭제해버리면 끝이지만 그 시대에는 한 문장을
정성들여 써야 했던 시기다. 과거에 깃펜을 휘갈기던 서양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동양에서는 문방사우가 선비를 대표하는 상징이면서도 '도(道)'를 닦는 도구였다.
예의를 철저히 훈련받고 사람이 얼마나 글을 신중하게 써야하는지를 배웠다고 본다.
다만 오늘날은 얼마나 워드문서를 짧은 시간안에 편집 작성하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인다.
댓글 한마디도 얼만큼 상대를 센스있게 조롱하고 비아냥대느냐가 재치있는 사람이다.
되려 진지하고 아날로그적인 글들은 이제 인기가 없다.
자판은 편하지만 가벼워서 타이핑인듯 하다. 재밌는 글만 쓰는 도구인가 보다.
타이트하고 핏하게 작성하지만 무게는 없어야 한다. 손가락에 힘을 빼고 모든 사람에게 공감을 가져다 주되 즐거워야만 한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 공자는 붓을 잡는 손의 검지 하나로 장수를 쓰러뜨렸다. 좀 과장된 것도 없지 않아 있지만 필력이라는게 어떤 것인지를 잘 설명해주는 일화라 생각한다. 진정한 글은 사실 무게가 있다. 얼마나 진중하고 심도있게 써댔으면 손가락에 그런 괴력이 깃들었나 싶다.
반면 나는 열손가락으로 평범한 사람을 밀어도 다 분질러지는건 아닐지 모르겠다.
손으로 글을 쓰다보면 참 드럽게 못쓰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재밌고 쉬운 글도 좋지만
그보다는 진리를 옮겨적을 때 그 무게를 감당할만한 필력이 생기고 싶은 욕심이 사실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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