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8일 토요일

정통과 보수

[정통과 보수]
나는 종교개혁의 한 갈래인 장로교회가 보수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통적'이라는 표현에 가깝다고 여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보수와 정통이란 표현을 구분하는 젊은이다.
보수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보전하여 지킴
2. 새로운 것이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전통적인 것을 옹호하며 유지하려 함.
정통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1. 바른 계통
2. 적장의 혈통
3. 사물의 중심이 되는 요긴한 부분.
보수와 정통은 언뜻 가까워보이지만 내 주관으로는 미세하게 다르다.
나는 정통을 Guardian(수호자, 후견인) 으로 이해하고 보수는 Conservatism(전통적인 것을 옹호함)으로 이해한다. 물론 보수란 단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아니지만 교회적으로 현시국에서는 경계의 대상이 될 듯 싶다.
전통적인 것을 옹호한다는 의미에서 풍기는 뉘앙스는 정통을 보존한다는 가정하에 자신들의 옛기질을 그대로 이어오겠다는 생각도 덤으로 따라오는 것 같다. 이런 태도는 결국 '정통'을 허울로 세우고 고집을 본질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정말 진리를 수호하는 Guardian의 역할을 하고 싶다면 그 좁은길을 쓸쓸함을 딛고서라도 지켜줘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진보가 튀어나가더라도...보수가 고집을 부리더라도 가디언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기에 그 두 영역이 기준을 잡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로교회는 현시국에 그 역할을 하도록 준비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이다.
장로교회가 다른 교단에 비해 우수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진리라는 것을 수호하는 역할에 있어 역사적으로 잘 갖춰진 시스템이 있었고 그로인해 후대인 우리가 잘 전달받을 수 있었다.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종교개혁자들의 의지는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유산으로써 남겨졌다. 그러나 보수라는 깃발의 미명하에 자신들의 고집까지 끌어넣으면서 언제까지 성도들이 절규하도록 만들지 모르겠다. 결정적으로 수호자는 '듣는 귀'가 발달되어있고 보수와 진보는 '말하는 입'이 발달되어있다.
교회의 진보든 보수든 자기말만 할 뿐 대부분이 성도와 소통하지 않는다. 더욱이 청년들에게 접근하는 법은 매우 미비하다. 툭해야 기타튕기고 사이킥 날리며 신들린 듯이 점프나 해대는 것을 나는 소통이라 보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들이 비판하는 TV에서 등장하는 설민석, 김태호PD, 라영석PD등 이상으로 청년들에게 교리나, 성경이나, 교회사등을 쉽고 재미있게 가르칠 수 있는가? 조승연 작가, 이종범 작가만큼이나 청년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조언해 줄 수 있는가?
김제동의 걱정말아요 그대만큼 직업이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비판하지 않은체 건강한 길로 가도록 독려하는 프로그램은 고민해 보았는가? 무한도전처럼 교회가 종교개혁의 현대적 실천에 대해서 하나님 빽 하나만 믿고 치밀한 계획하에 무모하게 도전해 보았는가?
나는 개혁주의란 슬로건을 내세운 교회가운데 결정적인 소통의 창구 없이 미디어 및 문화를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 이젠 변호해줄 말이 없다. 가디언으로써의 소명을 받았다면 적어도 정죄의 가리개를 벗고, 가시밭길에 서있는 한 영혼을 향해서 맨발로 걸어가는 각오를 갖추기를 기도하는게 현명한 처사인 줄을 알았으면 좋겠다.
나는 학사모를 쓴 신학자 군단보다 단 한명의 발로 뛰는 신학자에게서 그리스도를 본다. 부디 '전통'이기 보다는 성경중심의 '정통'이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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