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시국이 난세라고들 한다.
한국교회의 현실도 그렇게 비춰지고 있다. 그래서 기라성 같은 '영웅'의 출현을 기다리는 심리가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교회내에서도 '진리의 영웅'(표현하자면)이 등장하기를 바라고 있는 듯 하다. 혹은 목회자 또는 성도가 '영웅'이 되고 싶어하는 심리도 종종 본다. (영웅심리의 그림자는 자신도 모르게 자기를 '신격화'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현실도 그렇게 비춰지고 있다. 그래서 기라성 같은 '영웅'의 출현을 기다리는 심리가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교회내에서도 '진리의 영웅'(표현하자면)이 등장하기를 바라고 있는 듯 하다. 혹은 목회자 또는 성도가 '영웅'이 되고 싶어하는 심리도 종종 본다. (영웅심리의 그림자는 자신도 모르게 자기를 '신격화'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교회에 '영웅'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본다. (물론 어떤 경건서적 시리즈는 제목마다 '영웅'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기는 한다. 책 내용은 나쁘지 않다.)
왜냐하면 난세를 기록한 '연의'나 '사료'를 들춰봤을 때 영웅의 등장은 패자를 가리기 위한 '군웅할거'를 불러일으킨다. 즉, 많은 영웅들이 각각 한 지방에 웅거하여 세력을 과시하게 된다는 말이다. 또는 여러 영웅들이 세력을 다투어 땅을 갈라 버티게 되기도 한다.
영웅들의 전쟁이 오래 지속되면 지친 군중들이 딱 한 가지 생각으로 귀결되게 된다. 그것은 어느 영웅이던지 간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말고 난세만 평정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달리 말해 그런 상황에서 성도들이 사람에 대한 기대를 두지 않고 하나님께로 둔다면 다행이다. 그러나 지교회에서 위엣 말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이후에 매우 난처해지고 만다. 이렇게 되면 되려 목회자가 우상이 되어버리게 되는 위험성이 더 클 것이라 본다.
그러나 루스드라에 복음을 전파하던 바울과 바나바의 태도는 달랐다.
물론 그 두 선배가 솔직한 심정으로는 하나님이 쓰신 위대한 인물로 보이기는 한다. 루스드라 사람들을 향해 외치는 이들의 고백은 당황이 섞여있지만 겸손하고 아름답다.
물론 그 두 선배가 솔직한 심정으로는 하나님이 쓰신 위대한 인물로 보이기는 한다. 루스드라 사람들을 향해 외치는 이들의 고백은 당황이 섞여있지만 겸손하고 아름답다.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행 14:15)
물론 교회에서 영웅이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다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훌륭한 경건자가 배출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며 보기에 따라 '영웅'을 보내신 것으로 보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렇게 생각되어 지는게 조금 씁쓸하기도 하다. 그러나 선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선하게 이끄심을 믿기 때문에 안심하고 쓰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있다.